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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1. 光州 新昌洞 舊村遺蹟(광주 신창동 구촌유적)

발행일 2019-02-22
내용

 광주 신창동 구촌유적은 조사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 소성유구, 수혈, 지상건물지, 삼가마, 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6기가 확인되었으며 2호를 제외하고 부분적인 구조물만 확인된다. 건물지 구조는 적심, 담장, 배수구, 아궁이 시설이 남아 있으며, 연대는 적심석 · 담장의 크기 및 축조방법, 출토유물 등을 볼 때 조선시대 전기에 조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호는 구릉 능선에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건물 외곽에 기단석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증축 건물지로 확인되었다. 초축 건물지는 중앙의 방을 중심으로 정면 5칸에 측면에 각각 1칸씩 배치하는 구조이며 증축 시에는 서쪽을 제외하고 모두 한 칸이 늘어나는 구조를 하고 있다. 초축 건물지 내부에는 지진구, 배수로, 아궁이시설, 주공열 등이 건물을 중심으로 배치되는데 남쪽에는 2열의 주공열이 적심 배열과 동일하게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증축은 북쪽 전면과 동쪽 일부에서 두터운 와적이 목탄재층과 혼합되어 있어 부분적인 화재가 원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건물지의 성격에 대해서는 기단석 부재, 배향과 독특한 구조 등을 볼 때 주택용보다는 누정건축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유물은 분청사기류, 백자, 평기와, 도기류, 토제품 등이 확인되었다. 이중에서 연대 파악에 중심이 되는 유물은 분청사기류이다.  문양은 귀얄, 덤벙, 인화 문양 등이 시문되어 있으며, 특히 국화문대가 집중 시문된 호는 충효동가마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기와류는 막새류나 특수기와 없이 집선문, 청해파문, 복합문이 시문된 평기와류만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분청사기류, 기와류 등으로 보아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반의 조선시대 전기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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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19-08-21조회수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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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1. 光州 新昌洞 舊村遺蹟(광주 신창동 구촌유적)

발행일 2019-02-22
내용

 광주 신창동 구촌유적은 조사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 소성유구, 수혈, 지상건물지, 삼가마, 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6기가 확인되었으며 2호를 제외하고 부분적인 구조물만 확인된다. 건물지 구조는 적심, 담장, 배수구, 아궁이 시설이 남아 있으며, 연대는 적심석 · 담장의 크기 및 축조방법, 출토유물 등을 볼 때 조선시대 전기에 조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호는 구릉 능선에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건물 외곽에 기단석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증축 건물지로 확인되었다. 초축 건물지는 중앙의 방을 중심으로 정면 5칸에 측면에 각각 1칸씩 배치하는 구조이며 증축 시에는 서쪽을 제외하고 모두 한 칸이 늘어나는 구조를 하고 있다. 초축 건물지 내부에는 지진구, 배수로, 아궁이시설, 주공열 등이 건물을 중심으로 배치되는데 남쪽에는 2열의 주공열이 적심 배열과 동일하게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증축은 북쪽 전면과 동쪽 일부에서 두터운 와적이 목탄재층과 혼합되어 있어 부분적인 화재가 원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건물지의 성격에 대해서는 기단석 부재, 배향과 독특한 구조 등을 볼 때 주택용보다는 누정건축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유물은 분청사기류, 백자, 평기와, 도기류, 토제품 등이 확인되었다. 이중에서 연대 파악에 중심이 되는 유물은 분청사기류이다.  문양은 귀얄, 덤벙, 인화 문양 등이 시문되어 있으며, 특히 국화문대가 집중 시문된 호는 충효동가마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기와류는 막새류나 특수기와 없이 집선문, 청해파문, 복합문이 시문된 평기와류만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분청사기류, 기와류 등으로 보아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초반의 조선시대 전기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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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19-08-21조회수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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