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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4 益山 多松里 上馬遺蹟(익산 다송리 상마유적)

발행일 2011-11-10
내용

익산 다송리 상마유적은 익산시에서 시행하는 익산 종합의료산업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하여 실시하였다.

다송리 상마유적이 입지하고 있는 다송리 일원은 해발 17~30m의 야트막한 구릉성 평야에 해당하며, 구릉 정상과 곡간부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삼국~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 삼국시대 주거지 2기, 분묘유구 3기, 수혈유구17기, 구상유구 11기, 조선시대 토광묘 28기, 수혈유구22기, 소성유구 1기, 구상유구 12기, 유물포함층 1지점 등이 조사되었고, 유물은 모두 342점이 수습되었다.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은 유적 남동쪽 구릉의 정상부와 유적 중앙에 위치한 곡간부에서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주변에서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석영맥암제 석재를 이용한 석기이며, 유물포함층에서 채집한 토양의 AMS 연대측정결과 31,985±308BP와 27,686±473BP의 연대값을 얻을 수 있었다.

삼국시대 유구는 주거지와 수혈, 구 등의 생활유구와 석곽묘, 토광묘등의 분묘유구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와 석곽묘의 경우 삭평이 이루어져 정확한 유구의 양상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단, 주거지에서 출토된 삼족배의 경우 백제문화권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기종 중에 하나로 유적이 형성될 당시 이 지역이 이미 백제문화권에 편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금강유역에서 다수 확인되고 있는 원형수혈이 조사되었는데 주거지와 인접한 곳에서 유구가 확인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저장의 기능을 가진 주거지의 부속시설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유적내에서 1기가 확인되는 함정유구는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예로, 추후 동일한 예가 다수 확인된다면 유구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는 토광묘와 생활유적으로 추정되는 수혈, 소성유구, 구 등이 확인되었다.

토광묘는 조선전기~후기에 이르기까지 고른 분포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26호 토광묘에서는 朝鮮通寶가 출토됨에 따라 지표에서 간헐적으로 수습되고 있는 조선전기 분청사기가 부장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함을 시사하고 있다.

생활유적으로 추정되는 수혈, 구 등에서는 조선중기로 편년되는 백자와 도기,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현 지형이 계단식으로 경지정리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구들은 명확한 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성유구의 경우 주변에서 철의 생산 또는 단야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슬러그들이 수습됨에 따라 조선 후기 공방터와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출토된 백자와 도기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현재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는 익산시에는 고려시대 청자 혹은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가 보고된 예가 없으며, 『世宗實錄』 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기록상에도 자기소·도기소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이는 익산시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자기·도기 등의 수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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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18-07-16조회수 : 2671
상세

Vol. 14 益山 多松里 上馬遺蹟(익산 다송리 상마유적)

발행일 2011-11-10
내용

익산 다송리 상마유적은 익산시에서 시행하는 익산 종합의료산업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하여 실시하였다.

다송리 상마유적이 입지하고 있는 다송리 일원은 해발 17~30m의 야트막한 구릉성 평야에 해당하며, 구릉 정상과 곡간부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삼국~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 삼국시대 주거지 2기, 분묘유구 3기, 수혈유구17기, 구상유구 11기, 조선시대 토광묘 28기, 수혈유구22기, 소성유구 1기, 구상유구 12기, 유물포함층 1지점 등이 조사되었고, 유물은 모두 342점이 수습되었다.

구석기시대 유물포함층은 유적 남동쪽 구릉의 정상부와 유적 중앙에 위치한 곡간부에서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주변에서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석영맥암제 석재를 이용한 석기이며, 유물포함층에서 채집한 토양의 AMS 연대측정결과 31,985±308BP와 27,686±473BP의 연대값을 얻을 수 있었다.

삼국시대 유구는 주거지와 수혈, 구 등의 생활유구와 석곽묘, 토광묘등의 분묘유구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와 석곽묘의 경우 삭평이 이루어져 정확한 유구의 양상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단, 주거지에서 출토된 삼족배의 경우 백제문화권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기종 중에 하나로 유적이 형성될 당시 이 지역이 이미 백제문화권에 편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금강유역에서 다수 확인되고 있는 원형수혈이 조사되었는데 주거지와 인접한 곳에서 유구가 확인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저장의 기능을 가진 주거지의 부속시설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유적내에서 1기가 확인되는 함정유구는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예로, 추후 동일한 예가 다수 확인된다면 유구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는 토광묘와 생활유적으로 추정되는 수혈, 소성유구, 구 등이 확인되었다.

토광묘는 조선전기~후기에 이르기까지 고른 분포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26호 토광묘에서는 朝鮮通寶가 출토됨에 따라 지표에서 간헐적으로 수습되고 있는 조선전기 분청사기가 부장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함을 시사하고 있다.

생활유적으로 추정되는 수혈, 구 등에서는 조선중기로 편년되는 백자와 도기,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현 지형이 계단식으로 경지정리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구들은 명확한 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성유구의 경우 주변에서 철의 생산 또는 단야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슬러그들이 수습됨에 따라 조선 후기 공방터와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출토된 백자와 도기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현재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는 익산시에는 고려시대 청자 혹은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가 보고된 예가 없으며, 『世宗實錄』 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기록상에도 자기소·도기소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이는 익산시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자기·도기 등의 수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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