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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 長興 會寧鎭城 (장흥 회령진성)

발행일 2011-06-01
내용

성벽에 대한 조사결과, 성벽은 편축식에 의해 축조된 성벽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체성 잔존상태는 북벽을 중심으로 성벽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으며, 동벽과 서벽 일부가 남아있다. 동벽과 남벽은 현재 마을이 형성되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그리고 북문지 주변으로 비교적 잘 남아있는 석축 구간은 근대에 축조되어 초축과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벽 축조방법은 우선 바닥을 풍화암반토까지 굴착하고 작은 할석이 포함된 토사로 바닥면을 정지한 후 그 위에 성벽을 축조하였다. 외벽은 판석형의 기단석을 설치하였다. 그 위로 장대석을 1~3단 정도 축조하였는데, 기단석에서 15cm 정도 들여쌓았다. 면석은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빈 공간은 쐐기돌을 이용하여 막았다. 장대석 상면으로는 부정형의 할석으로 막쌓기 하였다. 그리고 지대석과 장대석 바깥쪽으로는 적갈색의 점토에 작은 할석이 포함된 층이 확인되었는데,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보축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내벽은 토사를 이용하여 편축식으로 축조하였다. 내부 채움 방법은 바깥쪽으로 면석을 설치하면서 안쪽으로 1~2m 폭으로 부정형 할석을 채워 넣었으며, 그 내측으로는 토사를 이용하여 면을 맞추었다. 이상과 같이 회령진성 축조방법 중 기단석과 장대석의 사용은 고흥 여도진성·녹도진성·발포진성 등 비슷한 시기의 다른 진성에서도 보이는 동일한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그리고 성벽 내측으로 토사를 이용하여 축조한 예는 녹도진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성벽 축조방법뿐만 아니라 성의 입지나 내부시설의 배치 등 인근 지역에서 확인된 비슷한 시기의 진성과 동일하며 전반적으로 규격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출토유물의 종류에 따른 출토량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청자가 1점, 임진왜란 이전으로 편년되는 조선전기 분청사기와 백자가 9점, 조선중기의 백자가 1점, 19세기~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백자가 2점으로 조선전기에 편중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접시로 추정되는 소문청자가 1점 출토되었다. 회령진성의 초축연대가 1478년과 1485년 경 임을 참조하였을 때 Tr조사과정에서 수습된 청자는 회령진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는 7점이 수습되어 출토된 자기류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다.

시문기법별 출토량을 살펴보면 인화·귀얄 등의 문양이 전혀 시문되지 않은 조질의 무문 분청사기가 5점이다. 일부 기물의 경우 고려말기의 청자로도 볼 수 있으나 태토에 가는 사립이 섞여 있고 유약이 비교적 밝은 회청색을 띠고 있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조선시대에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분청사기의 시문기법과 관련하여 조선 초기(15세기 1/4분기)부터 공납용으로 제작되었던 인화기법의 분청사기가 출토되지 않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회령진성의 초축연대가 1478년과 1485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유추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좀더 심도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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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18-07-16조회수 : 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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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 長興 會寧鎭城 (장흥 회령진성)

발행일 2011-06-01
내용

성벽에 대한 조사결과, 성벽은 편축식에 의해 축조된 성벽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체성 잔존상태는 북벽을 중심으로 성벽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으며, 동벽과 서벽 일부가 남아있다. 동벽과 남벽은 현재 마을이 형성되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그리고 북문지 주변으로 비교적 잘 남아있는 석축 구간은 근대에 축조되어 초축과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벽 축조방법은 우선 바닥을 풍화암반토까지 굴착하고 작은 할석이 포함된 토사로 바닥면을 정지한 후 그 위에 성벽을 축조하였다. 외벽은 판석형의 기단석을 설치하였다. 그 위로 장대석을 1~3단 정도 축조하였는데, 기단석에서 15cm 정도 들여쌓았다. 면석은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빈 공간은 쐐기돌을 이용하여 막았다. 장대석 상면으로는 부정형의 할석으로 막쌓기 하였다. 그리고 지대석과 장대석 바깥쪽으로는 적갈색의 점토에 작은 할석이 포함된 층이 확인되었는데,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보축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내벽은 토사를 이용하여 편축식으로 축조하였다. 내부 채움 방법은 바깥쪽으로 면석을 설치하면서 안쪽으로 1~2m 폭으로 부정형 할석을 채워 넣었으며, 그 내측으로는 토사를 이용하여 면을 맞추었다. 이상과 같이 회령진성 축조방법 중 기단석과 장대석의 사용은 고흥 여도진성·녹도진성·발포진성 등 비슷한 시기의 다른 진성에서도 보이는 동일한 방법으로 축조되었다. 그리고 성벽 내측으로 토사를 이용하여 축조한 예는 녹도진성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성벽 축조방법뿐만 아니라 성의 입지나 내부시설의 배치 등 인근 지역에서 확인된 비슷한 시기의 진성과 동일하며 전반적으로 규격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출토유물의 종류에 따른 출토량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청자가 1점, 임진왜란 이전으로 편년되는 조선전기 분청사기와 백자가 9점, 조선중기의 백자가 1점, 19세기~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백자가 2점으로 조선전기에 편중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접시로 추정되는 소문청자가 1점 출토되었다. 회령진성의 초축연대가 1478년과 1485년 경 임을 참조하였을 때 Tr조사과정에서 수습된 청자는 회령진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는 7점이 수습되어 출토된 자기류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다.

시문기법별 출토량을 살펴보면 인화·귀얄 등의 문양이 전혀 시문되지 않은 조질의 무문 분청사기가 5점이다. 일부 기물의 경우 고려말기의 청자로도 볼 수 있으나 태토에 가는 사립이 섞여 있고 유약이 비교적 밝은 회청색을 띠고 있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조선시대에 생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분청사기의 시문기법과 관련하여 조선 초기(15세기 1/4분기)부터 공납용으로 제작되었던 인화기법의 분청사기가 출토되지 않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회령진성의 초축연대가 1478년과 1485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유추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좀더 심도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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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18-07-16조회수 : 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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