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본문영역

상세

샘플이미지

해남 현산 읍호리고분 긴급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조사사유 긴급발굴조사
조사기간 2019/07/29~2019/08/27

 1.조사 성과


  해남 현산 읍호리고분 발굴조사 내용을 토대로 주요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시대 고현터(새금현:塞琴縣)로 알려진 지금의 현산면 소재지 일원으로는 일찍이 월송리 조산고분이 조사 보고된 바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중요한 지역임이 알려져 왔다. 반면 1970년대 현산초등학교 소장 백제토기가 국립광주박물관 신고품으로 소장된 이래, 해당 유물과 관련된 유구나 유적의 존재 의구심은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읍호리 일원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고분 자료가 연이어 확인되면서 지금의 현산 일원의 역사적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게 되었다. 이 새로운 관심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시초가 이번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읍호리고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읍호리고분 구역 가운데 302㎡에 불과한 발굴조사 면적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무덤 3기와 묘역 공간에서 좀처럼 확인되지 않던 제의시설이 함께 확인된 사실에서 당시 묘역의 경관을 복원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확보된 점을 들 수 있다. 묘역 한쪽 공간에 석축으로 쌓아 구축한 제의시설은 무덤이 조성될 때마다 토지신에 대한 주검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2호·3호로 명명된 석곽 2기는 동일 분구로 복원할 수 있는 공간에 안치된 매장시설로 주곽과 부곽 피장자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석곽은 영산강유역 지역사회에 고총고분이 축조되는 5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는데, 해남반도에서 산 사면의 일부를 깎아내어 분구 효과를 가시화시킨 저분구 조성의 첫 사례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런 예는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을 제외한다면 영산강유역 고대사회 문화권에서는 드문 경우이다. 


 넷째, 무덤 축조와 부장유물 안치와 같은 매장 프로세스에서 다원적 요소가 반영된 내용이 확인된 점이다. 분구상 묘역 조성이나 매장시설 구축에서 가야나 일본열도의 요소가, 부장유물 구성과 프로세스 내용에서 백제와 현지 마한 풍습 요소가 어우러진 점에서 피장자의 성격과 당시 읍호리 일원이 중시되고 있었던 지정학적 분위기를 확인하게 되었다.


 다섯째, 읍호리고분에 대한 이번 발굴조사와 주변 탐문조사에서 5∼6세기 당시 한반도 서남부에 걸쳐 진행된 왕성한 해상교류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고분은 단기간에 조성된 소수의 분묘유적이 아니라 백제 한성기부터 웅진·사비기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집단 묘역임이 밝혀졌다. 이는 백제시대 새금현(塞琴縣)의 현터가 현산면 일원임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읍호리고분 조성 세력은 마한사회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후 가야, 백제, 왜 등과 다국적 해상교류를 유지했던 현지인 임을 재차 입증해준 고고학 조사의 성과로 평가된다. 

  • 1._조사대상지역_원경사진_.jpg조사대상지역 원경사진
  • 1._조사대상지역_항공사진_.jpg조사대상지역 항공사진
  • 2호_수습유물.JPG2호 수습유물
  • 3호_석곽묘_전경_및_출토유물.JPG3호 석곽묘 전경 및 출토유물
  • 4호_석실_전경.JPG4호 석실 전경
상세

해남 현산 읍호리고분 긴급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조사사유 긴급발굴조사
조사기간 2019/07/29~2019/08/27
내용

 1.조사 성과


  해남 현산 읍호리고분 발굴조사 내용을 토대로 주요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시대 고현터(새금현:塞琴縣)로 알려진 지금의 현산면 소재지 일원으로는 일찍이 월송리 조산고분이 조사 보고된 바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중요한 지역임이 알려져 왔다. 반면 1970년대 현산초등학교 소장 백제토기가 국립광주박물관 신고품으로 소장된 이래, 해당 유물과 관련된 유구나 유적의 존재 의구심은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읍호리 일원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고분 자료가 연이어 확인되면서 지금의 현산 일원의 역사적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게 되었다. 이 새로운 관심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시초가 이번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읍호리고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읍호리고분 구역 가운데 302㎡에 불과한 발굴조사 면적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무덤 3기와 묘역 공간에서 좀처럼 확인되지 않던 제의시설이 함께 확인된 사실에서 당시 묘역의 경관을 복원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확보된 점을 들 수 있다. 묘역 한쪽 공간에 석축으로 쌓아 구축한 제의시설은 무덤이 조성될 때마다 토지신에 대한 주검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2호·3호로 명명된 석곽 2기는 동일 분구로 복원할 수 있는 공간에 안치된 매장시설로 주곽과 부곽 피장자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석곽은 영산강유역 지역사회에 고총고분이 축조되는 5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는데, 해남반도에서 산 사면의 일부를 깎아내어 분구 효과를 가시화시킨 저분구 조성의 첫 사례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런 예는 나주 가흥리 신흥고분을 제외한다면 영산강유역 고대사회 문화권에서는 드문 경우이다. 


 넷째, 무덤 축조와 부장유물 안치와 같은 매장 프로세스에서 다원적 요소가 반영된 내용이 확인된 점이다. 분구상 묘역 조성이나 매장시설 구축에서 가야나 일본열도의 요소가, 부장유물 구성과 프로세스 내용에서 백제와 현지 마한 풍습 요소가 어우러진 점에서 피장자의 성격과 당시 읍호리 일원이 중시되고 있었던 지정학적 분위기를 확인하게 되었다.


 다섯째, 읍호리고분에 대한 이번 발굴조사와 주변 탐문조사에서 5∼6세기 당시 한반도 서남부에 걸쳐 진행된 왕성한 해상교류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고분은 단기간에 조성된 소수의 분묘유적이 아니라 백제 한성기부터 웅진·사비기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집단 묘역임이 밝혀졌다. 이는 백제시대 새금현(塞琴縣)의 현터가 현산면 일원임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읍호리고분 조성 세력은 마한사회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후 가야, 백제, 왜 등과 다국적 해상교류를 유지했던 현지인 임을 재차 입증해준 고고학 조사의 성과로 평가된다. 

사진
조사대상지역 원경사진 조사대상지역 항공사진 2호 수습유물 3호 석곽묘 전경 및 출토유물 4호 석실 전경
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20-02-10조회수 : 31

하단정보

(우 57312)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도개안길 75(월산리 493-24) TEL. 061.382.0001/383-7188 FAX. 061.383.7189

Copyright 2016 (재)대한문화재연구원 All rights reserved.